한국군 강간 피해 사례 증언 - 쨘 티 냐이 씨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 백마부대 소속 장교로부터 지속적인 강간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쨘 티 냐이 (Tran Thi Ngai) 씨.
전쟁 당시 24세였던 쨘 씨는 푸우 옌 (Phu Yen) 성 한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간호사로 근무했다. 집에 혼자 있던 어느 날 한국군 장교가 침입해 자신을 강간했으며 그 결과 아이를 뱄다고 주장한다.
그 장교는 이후에도 연거푸 찾아와 자신을 겁탈했으며 심지어 타지로 끌고 다니며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강요한 것으로 그녀는 밝혔다. 장교는 한국군 철수와 함께 돌아간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전해오지 않고 있다.

쨘 씨는 2019년 1월 영국 의회 주최로 열린 전쟁 관련 성범죄 방치 캠페인에 참석해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자신과 같은 피해사례가 있었음을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쨘 티 냐이 씨 영국 의회 연설 비디오>

<쨘 씨 연설내용 번역>

멀리 영국에까지 와서 고귀한 분들을 만나게 되어 고맙게 여깁니다.
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국에서 제 피해 사례를 드려다 보고 정의를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24살 때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한국 군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날 일을 저는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날 부모님은 밭에 나가 일하셨고 저만 혼자 집에 있었습니다. 한 한국군 장교가 뭘 사려는 척하고 집에 들어오더니 나를 힘으로 누르고 강간했습니다. 반항했지만 나를 방에 처넣고 문을 닫아건 뒤 또다시 강간했습니다. 그 군인은 온 힘으로 나를 제압했고 수류탄, 총 등으로 갖춘 군복을 입고 있어 그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일를 치른 뒤 그 사람은 떠났고 나만 혼자 남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5개월이 지나서야 전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을에서 산파역 간호사로 일하던 나로서는 차마 아기를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를 낳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입을 딱 다물며 지냈고 그렇게 라이 따이 한 (한국계 혼혈아)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도 저주의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나와 아기가) 집안에 내린 저주라는 소리를 부모님으로 자주 들었고 나는 그저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숨죽여 살았습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겪는 동안에 그 한국군 장교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한밤중에 그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자정쯤에 방문을 두드리는데 총, 칼, 수류탄 등으로 완전무장한 채 나를 들여다보는 그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리고는 이틀 후에 다른 장교가 와서 나와 아이를  닌호아에 있는 그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까 그 장교가 나를 군 막사에 가두고 또다시 범했습니다.

이틀을 그렇게 범한 뒤에 내가 애원하며 빌자 나를 놔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이 제가 살아서 온 것을 놀라워하며 기뻐하셨습니다. 잔인하기로 악명높은 한국 군인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날 죽인 줄로만 알았는데 살아온 것이 기적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그 장교가 그 후로도 한 번인가 더 찾아왔는데 나를 범하고는 내게 싫증이 났는지 지금까지 다시는 나타난 일이 없습니다.

지금껏 혼자서 애들을 키우며 살아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날 보고 '적의 자식'을 낳았다고 손가락질할 때면... (중단) 통일된 뒤 (종전 후) 지역 경찰과 관공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내가 적과 통하여 애를 낳았다면서 그런 나도 적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우리 가족 재산을 몰수하고, 집에 차가 한 대 있었는데 그것도 빼앗고, 집안 사람들을 모조리 끌고 가서 심문했습니다. 특히 부당함을 호소하는 아버지는 심한 매를 맞은 끝에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건대, 아버지와 삼촌, 나를 감옥에 가둬 놓고 밤마다 심문하는데 어느 날 자정께 아버지가 고문받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왜 딸이 한국군과 정을 통하도록 내버려 두었냐. 너도 적과 내통하는 것 아니냐"며 다그쳤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어머니 (아버지의 오류), 삼촌, 나 순으로 풀려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얼마나 혹독히 시달리셨는지 그로부터 7일 후에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우리 애들에게 욕하고 때리기를 일쑤로 하였습니다. 특히 여기 서있는 이 애가 제일 많이 당했는데, 심지어 어느 선생으로부터는 "너는 우리를 죽이러 온 한국군의 아들이다. 학교엔 뭣 하러왔는냐. 아무 쓸모도 없는 놈"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내 아들이 이런 식으로 줄곧 당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운동장에서 애들 7-8명에게 둘러싸여서 몰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이 애 누나는 아예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와 베트남 정부로부터 모두 우리가 당한 사실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는 베트남에 한국인 혼혈아가 살고 있다는 사실마저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여기 영국의 친구분들이 그 사실을 조명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데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최소한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을 때까지 저희를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쨘 씨 아들 쨘 반 티 (Tran Van Ty) 씨 연설 번역>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영국과 영국인 친구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도움이 있어야 우리의 사례를 세상에 드러내고 우리가 바라는 인정을, 한국 정부로부터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씀드립니다.

여기 계신 저희 어머니는 젊은 날 한국군 장교 두 명으로부터 강간을 당했습니다.

통일된 이후 베트남에는 한국군들이 더 이상 남아있질 않았고 우리 (라이 따이 한)가 유일하게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우리 어머니를 적으로 간주하고 나를 전쟁이 남긴 쓰레기로 취급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사실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한국은 경제가 고도로 성장하던 80년대부터 베트남 정부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맞춰 우리도 문제를 제기했는데 한국 정부가 우리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너무나 졸렬했습니다.

1989년에 한국 정부는 사실확인 차 관리들을 보냈습니다. 그 관리들은 라이 따이 한 각 가정을 찾아다니며 증거가 될만한 사진이나 물건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차후 판단을 위한 참고로 삼을 것이라며 그것들을 가져갔습니다. 그렇게 증거물을 모조리 회수해간 뒤에 한두 해도 아니고 지금까지 장작 30년간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한다는 소리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인 군인과 베트남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뿐입니다.

그동안 저는 7명의 한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고,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 베트남 내 한인사회, 한국의 여러 행정부처 등을 찾아다니며 호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 때 강압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한국군에 의해 태어난 혼혈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길 원합니다. 우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지 말아 주십시오. 자기 핏줄마저 모른 체한다면, 그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는데 그 사실마저 덮으려고 한다면 그런 나라의 가치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여기에서 고귀한 분들의 도움으로 사실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 힘을 이어서 한국 정부로부터도 이 자명한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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