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남긴 상처, 사람이 치유하길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고 한국군이 그곳에 파병된 지도 어언 50여년 세월이 흘렀다. 수천 년을 달리 살아온 사람들에게 파병 기간 10년이란 우연한 스침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짧은 만남치곤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인연의 울림이 너무 크다.
서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사를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해방공간-한국전쟁-전후복구와 경제부흥이란 가파른 세월을 한국은 살았다. 베트남은 100년 가까운 프랑스 식민지를 종식시키고 새 국가의 틀을 서로 다른 이념 위에서 모색하고자 격렬한 혼란 속에 있었고, 세계 냉전체제란 블랙홀을 만나 급격히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땅 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역사의 회오리가 어디로 불든지 간에 자식 배불릴 양식과 비바람 피할 잠자리, 희미하나마 웃을 수 있는 여유,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최소한을 얻기 위해 한쪽은 목숨을 걸고 남을 죽여야 했고, 다른 쪽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야 했다.
그 와중에서 역사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나 아픈 일들이 벌어졌다. 끔찍한 땅굴 매복에 당해 너덜너덜해진 전우의 시체를 매고 올라와야 했고,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온 가족이 몰살당한 시쳇더미를 비집고 혼자 살아나기도 했다. 아침의 아군이 밤엔 적으로 돌변하는 아비규환 속에서 한쪽은 필사적으로 총을 쐈고 다른 쪽은 네이팜 화상의 고통을 잊고자 자신을 죽여달라고 빌고 또 빌어야 했다.
어찌 보면 그리 다른 사람들도 아니었다. 양쪽 모두가 오랫동안 농사짓고 살면서 어른 공경할 줄 알고 동네 사람 어려워할 줄 아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모 같고 동생 같고 형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한 데 가둬 놓고 마을에 불을 지르고 집단으로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말은 안 통해도 병 고쳐주고 학교 세워 주며 살갑게 굴던 이들이 밤새 돌변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서로에게 참혹한 기억으로 뇌리에 남았다.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싫든 좋든 새 생명이 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양쪽 모두에게 버려졌다. 하룻밤 정분이든 애틋한 사랑이었든, 합의였든 강압이었든 모두 똑같이 한쪽에겐 잊고 싶은 과거의 부산물이고 다른 쪽에겐 '적의 혈육'이었다. 이들이 아직까지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울부짖고 있다. 또 어떤 이는 학살당한 가족의 억울함을 달래 달라며 한국을 찾았고 반대 쪽에서는 전쟁에서의 불가피한 살상이라고 맞받았다.
이 울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갈수록 커져 더는 역사의 망각에 기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담담히 기록한다. 한국군을 실은 배가 부산항을 떠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한 군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배가 닿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험난한 세월을 산 어느 베트남 마을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찾아 듣고 기록으로 남긴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혹 역사가 남긴 상처를 사람이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면서.
그들에게 들어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과연 벌어졌는지 그 역사적 진실? 사실을 둘러싼 개개인의 평가, 느낌, 의미 부여? 아니면 그것을 통해 베트남 전쟁이 한국 사회에 남긴 영향과 파장을 총체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보고 겪은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그와 다른 말들은 다 거짓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담아낼 오럴 히스토리 (구전 역사)는 ‘거짓’들이 난무하고 상충하는 격돌 장이 될 것이다. 그만큼 저마다의 사실이 다르다. 그런데 나는 두 손 놓은 채 ‘이 모든 게 그저 한 개인이 주장하는 ‘사실’일 뿐이다, 나는 단지 그것들을 다 모아 놓는다, 사실들이 모여서 큰 모자이크를 이뤄낼 때 하나의 거대한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라는 식으로 느긋하게 굴어도 될까?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인터뷰를 진행하고 기록한다는 행위 자체가 그 역사를 재단하는 한 사람으로 나를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인터뷰하나, 어떤 질문을 던지나, 기록에 어떤 답변을 넣고 빼나 등등 매 순간의 결정으로 역사는 재단된다. 아니 그 전에 응답자가 인터뷰하는 나의 정치적 입장을 탐지하러 들것이고 그 판단에 따라 답변을 달리할 것이다. 결국, 전지적 작가 시점, 중립자 입장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금 묻는다. 나는 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려 하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20대 초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그들은 엄청난 일을 겪었다. 한평생 그 기억이 그들을 유령처럼 따라다녔다.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살지 않았을 그런 삶을 그들은 살았다. 그런데 세상은 그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나는 기억한다. 고등학생 때 파월 장병 출신의 한 선생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놓고 매시간마다 베트남 전쟁 이야기로 수업의 반을 채웠다. 웃고 떠들며 듣던 이야기이지만 돌이켜볼 때 들어주는 귀가 얼마나 없었으면 철부지 우리에게라도 외쳐대야 했을까 생각하니 이제나마 가슴이 아려온다.
또 기억한다. 평소 수업 내용 외 빈말은 하지 않던 중년의 어느 여선생은 전쟁 이야기를 재밋거리로 떠벌리는 우리들에게 “너희들이 배불리 먹고 지내는 게 다 누군 때문인지 아느냐. 그들의 핏값으로 이뤄진 것을 아느냐”라고 성토했다.
누가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처절한 이야기들이 묻혀 있다. 묻혀 있기 때문에 마치 전혀 없는 일처럼 돼버렸다. 그들의 증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런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고 가슴앓이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한 사회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개인이 얼마나 아프고 다치고 영향받을 수 있는지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들의 핏값으로 배불리 살았던 후세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서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사를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해방공간-한국전쟁-전후복구와 경제부흥이란 가파른 세월을 한국은 살았다. 베트남은 100년 가까운 프랑스 식민지를 종식시키고 새 국가의 틀을 서로 다른 이념 위에서 모색하고자 격렬한 혼란 속에 있었고, 세계 냉전체제란 블랙홀을 만나 급격히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땅 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역사의 회오리가 어디로 불든지 간에 자식 배불릴 양식과 비바람 피할 잠자리, 희미하나마 웃을 수 있는 여유,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최소한을 얻기 위해 한쪽은 목숨을 걸고 남을 죽여야 했고, 다른 쪽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야 했다.
그 와중에서 역사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나 아픈 일들이 벌어졌다. 끔찍한 땅굴 매복에 당해 너덜너덜해진 전우의 시체를 매고 올라와야 했고,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온 가족이 몰살당한 시쳇더미를 비집고 혼자 살아나기도 했다. 아침의 아군이 밤엔 적으로 돌변하는 아비규환 속에서 한쪽은 필사적으로 총을 쐈고 다른 쪽은 네이팜 화상의 고통을 잊고자 자신을 죽여달라고 빌고 또 빌어야 했다.
어찌 보면 그리 다른 사람들도 아니었다. 양쪽 모두가 오랫동안 농사짓고 살면서 어른 공경할 줄 알고 동네 사람 어려워할 줄 아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모 같고 동생 같고 형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한 데 가둬 놓고 마을에 불을 지르고 집단으로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말은 안 통해도 병 고쳐주고 학교 세워 주며 살갑게 굴던 이들이 밤새 돌변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서로에게 참혹한 기억으로 뇌리에 남았다.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싫든 좋든 새 생명이 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양쪽 모두에게 버려졌다. 하룻밤 정분이든 애틋한 사랑이었든, 합의였든 강압이었든 모두 똑같이 한쪽에겐 잊고 싶은 과거의 부산물이고 다른 쪽에겐 '적의 혈육'이었다. 이들이 아직까지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울부짖고 있다. 또 어떤 이는 학살당한 가족의 억울함을 달래 달라며 한국을 찾았고 반대 쪽에서는 전쟁에서의 불가피한 살상이라고 맞받았다.
이 울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갈수록 커져 더는 역사의 망각에 기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담담히 기록한다. 한국군을 실은 배가 부산항을 떠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한 군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배가 닿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험난한 세월을 산 어느 베트남 마을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찾아 듣고 기록으로 남긴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혹 역사가 남긴 상처를 사람이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면서.
나는 무엇을 기록하려는가?
누군가의 아픔은 기억돼야 한다
그들에게 들어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과연 벌어졌는지 그 역사적 진실? 사실을 둘러싼 개개인의 평가, 느낌, 의미 부여? 아니면 그것을 통해 베트남 전쟁이 한국 사회에 남긴 영향과 파장을 총체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보고 겪은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그와 다른 말들은 다 거짓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담아낼 오럴 히스토리 (구전 역사)는 ‘거짓’들이 난무하고 상충하는 격돌 장이 될 것이다. 그만큼 저마다의 사실이 다르다. 그런데 나는 두 손 놓은 채 ‘이 모든 게 그저 한 개인이 주장하는 ‘사실’일 뿐이다, 나는 단지 그것들을 다 모아 놓는다, 사실들이 모여서 큰 모자이크를 이뤄낼 때 하나의 거대한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라는 식으로 느긋하게 굴어도 될까?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인터뷰를 진행하고 기록한다는 행위 자체가 그 역사를 재단하는 한 사람으로 나를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인터뷰하나, 어떤 질문을 던지나, 기록에 어떤 답변을 넣고 빼나 등등 매 순간의 결정으로 역사는 재단된다. 아니 그 전에 응답자가 인터뷰하는 나의 정치적 입장을 탐지하러 들것이고 그 판단에 따라 답변을 달리할 것이다. 결국, 전지적 작가 시점, 중립자 입장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금 묻는다. 나는 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려 하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20대 초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그들은 엄청난 일을 겪었다. 한평생 그 기억이 그들을 유령처럼 따라다녔다.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살지 않았을 그런 삶을 그들은 살았다. 그런데 세상은 그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나는 기억한다. 고등학생 때 파월 장병 출신의 한 선생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놓고 매시간마다 베트남 전쟁 이야기로 수업의 반을 채웠다. 웃고 떠들며 듣던 이야기이지만 돌이켜볼 때 들어주는 귀가 얼마나 없었으면 철부지 우리에게라도 외쳐대야 했을까 생각하니 이제나마 가슴이 아려온다.
또 기억한다. 평소 수업 내용 외 빈말은 하지 않던 중년의 어느 여선생은 전쟁 이야기를 재밋거리로 떠벌리는 우리들에게 “너희들이 배불리 먹고 지내는 게 다 누군 때문인지 아느냐. 그들의 핏값으로 이뤄진 것을 아느냐”라고 성토했다.
누가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처절한 이야기들이 묻혀 있다. 묻혀 있기 때문에 마치 전혀 없는 일처럼 돼버렸다. 그들의 증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런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고 가슴앓이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한 사회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개인이 얼마나 아프고 다치고 영향받을 수 있는지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들의 핏값으로 배불리 살았던 후세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사실'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또 아파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가족을 잃고 순결을 잃은 베트남 인민들이다. 그 억울함이 사무쳐 강을 이뤘다. 그런데도 사실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별로 중요치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에겐 사실 규명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야 한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한을 풀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또 다른 사실과 충돌한다. 그들의 사실은 한국인 참전군인들의 사실과 충돌한다. 그들이 맞다면 이쪽은 그 희생을 겪으며 지금까지 버티어온 마지막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이다. 생의 종말과도 같은 아픔을 겪는 것이다. 그래서 참전군인들에게도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내가 담아낼 오럴 히스토리는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법정과 같은 것인가?
누군가의 아픔은 기억돼야 한다. 특히 사회와 역사라는 거대한 힘에 속절없이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아픔은 살아있는 누군가에 의해서 기억돼야 한다. 문제는 그 이야기들이 향후 어떻게 기억되는가는 지금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록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법정의 재판장을 자임할 수 없다. 다만 화해를 모색하는 장으로 이 기록의 광장을 꾸밀 뿐이다. 여기서 접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서로에 대해 좀 더 알게 된다면 분명 연민의 정이 샘솟을 것이란 믿음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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