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전투 - 베트남전 상이군인의 귀국 후 삶



증언하는 강 하사는 (신분보호를 위해 실명 거론을 피함) 1966년 백마부대 일원으로 베트남 중남부 투이 호아 (Tuy Hoa)에 파병돼 수색분대를 이끈 인물이다. 모든 게 낯설고 서툴러 많은 사상자를 낸 파병 초창기에 보병 척후병으로서 전투의 한복판에 그는 서 있었다. 그때 적군이 던진 수류탄 파편에 맞아 야전병원에서 치료받았으나 그 후유증으로 귀국 후 50여 년간을 불구의 몸으로 살아왔다.

이십여 차례나 계속된 수술과 재활, 또 재수술 속에 그의 청춘이 갔고 그의 아이들이 병상 곁에서 유년기도 없이 어른을 맞았다. 상이군인의 그 고단한 세월 동안 그의 가족 곁엔 국가도, 전우도 없었고 사회의 따뜻한 시선마저 머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오롯이 아내의 몫이었다.

충무무공훈장의 빛나는 전공은 액자 속에만 걸렸을 뿐 “몸 받쳐 헌신한” 그를 국가는 흥정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에겐 그 ‘흥정’ 또한 야박했다. 비전투병도 국가유공자 보상에서 6급을 받는 일이 드물지 않는데 그의 상흔과 몸에 박힌 파편들은 국가에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왜 그에게만 국가가 그리 가혹한지 강 하사는 영문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의문은 울분을 낳았다. “우리의 핏값으로 경부 고속도로 놓고 국가 경제발전 시켜놓곤 이제 와서 몰라라 한다”는 격분에 찬 목소리다. 그 ‘핏값’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린 후세대들이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소리이다.



곧 팔순을 바라보는 강 하사가 지닌 마지막 소원은 그가 국가유공자 보상 재심사에서 6급 판정을 받아 자신이 죽은 후에도 아내가 그 보상금을 이어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봤자 월 150만 원 정도의 생활비 보조지만 한 평생 고생만 해온 아내에게 그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이 영상은 50여 년 전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이란 역사적 사실이 당시 사람들에게 남긴 경험과 ‘기억’들을 모아 후세에게 전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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