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기억을 위해 - 전투병 참전담 모음 1

백마부대 수색분대 강 하사 인터뷰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그 뿐"


강 하사 (신분 보호를 위해 실명 거론을 피함)는 한밤중에 들이닥친 사람들에 의해 자다 말고 훈련소로 끌려갔다. 전쟁터로 간다는 것을 그곳에서 처음 들었다. 이어 부산항으로 내려가는 기차역에서 부모의 얼굴을 보는 둥 마는 둥 대하고 베트남 가는 배에 태워졌다. “국가가 명령하니 갔고, 또 한국전 때 받은 은혜 갚는 마음으로 갔다”고 했다.

그 후 다시 귀국선에 오르기까지 1년간을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당시는 전투부대 파병 2년 차 (1966년)로 현지의 지형, 사람, 기후 등 모든 것이 낯설고 적응이 미숙하던 시절이라 사상자를 무더기로 배출했다. 강 하사는 이 시기에 백마부대 일원으로 베트남 중남부에 위치한 투이 호아 (Tuy Hoa)에 배속돼 수색분대를 이끌며 전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가 파병 초창기에 보병 척후병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은 그의 증언에 특별한 무게를 실어준다.
첫째, 그는 최전방에서 적병과 맞닥트리는 지점에 있었다. 심지어는 수색병의 임무 특성상 전선을 넘어 적군 속에 있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전쟁터에서 벌어진 일과 그 주변 상황을 신빙성 있게 증언할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둘째, 당시는 파병 초창기였다. 현지 지형지물과 사정에 맞는 전술을 고안하고, 현지인들에 대한 대민대응책을 구상하는 시기였다. 군대도 한 개인처럼 시행착오를 겪는다. 하지만 군대가 겪는 시행착오는 언제나 피로써 그 대가를 치뤄야 한다. 이력이 붙은 병사와 군대라면 불필요한 살상을 당하거나 초래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던 것만 이 때는 그렇지 못했다. 아군과 현지 민간인 모두에게 많은 희생이 초래됐다. 더구나 한국군 지휘부는 미국 편입을 거부한 채 독자적인 작전 수행권을 가져오기 위해 무리한 전술을 초창기에 폈다는 주장도 있다.

강 하사는 바로 이 시기에 베트남 전쟁터에 있었다. 그가 회상하는 전쟁은 혼란과 공포로 요약된다. 그 혼란을 강 하사는 “360도가 전부 적이야”라는 말로 대신했다. 베트콩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내 반정부 무장투쟁 조직)과 북베트남 정규군이 벌이는 게릴라 전술로 인해 누가 적병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한국군을 극심한 혼란에 빠트렸다.

이 혼란은 위 인터뷰에서 강 하사가 밝히듯 극심한 공포심으로 이어졌다. “악한 상황이 사람을 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강 하사는 증언했다.

● 민간인 보복성 살상 - 적이 “민간인을 앞세우고” 기습해 “대대본부가 뚫리고 중대본부가 뚫리는 날”이면 인근 마을로 나가 “주민 전부 세워놓고 긁어버렸다”


● 포로 보복성 처형 – “아군 하나라도 희생되면 악에 받쳐서 걸리면 다 죽이는 거야”, “초창기에는 얼추 다 죽였다”


● 포로 참수 – 연대장이 권총을 들이대며 명령했고 강 하사가 직접 참수한 사실 고백; 그 후 명령에 따라 잘린 적병의 목을 허리춤에 차고 부대를 돌며 구경을 시킴 (이런 처형 방식은 일본 군국주의 시절 만주군이 자행했던 방법과 유사해 연대장이란 인물을 통해 일제 군부 잔재가 베트남에까지 이어진 정황을 보여준다)


혼란 – 공포 – 처형과 살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무엇을 수긍하고 무엇을 비판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혹자는 ‘그들은 더 이상 민간인이 아니었다”면서 “전쟁터에서 살상은 불가피한 것”이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게릴라 전술을 택한 그들 지휘부의 탓’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아무리 전쟁터라고 해도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 보복에 의해 민간인과 포로를 처형하고 살상한 것은 그 선을 넘은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인터뷰에는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단지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면 그뿐”이라는 강 하사의 말대로 ‘거기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나’를 알아보려 했고 그 몇 가지 사실을 들었다. 물론 한 개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다시 말해, 이 사실들에 관해 왜, 어떻게, 누구 때문에 등등의 해석과 가치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적군이 던진 수류탄에 맞아 귀국 후 50여 년간을 불구의 몸으로 살아온 강 하사가 적병을 돌이켜 ‘그 양반’이라 칭하는 것을 들었을 때 ‘세월은 무쇠도 녹인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 어제의 적이 지금은 '그 양반'이 되었다. 이제는 ‘나의 기억’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도 공정히 기억해 주는 ‘너그러운 시간’이 도래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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